골드베르크 변주곡 여행안내서 - Andras Schiff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투어가 벌써 11월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한 시즌에 3번째 다른 리사이틀 프로그램이다. 2월 카네기홀에서 <쇼팽 에뛰드>, 6월에 니코틴 같은 <전람회의 그림> 그리고 11월 <바흐의 골드베르크>
빠르다! 임윤찬의 바흐 신포니아에 매료된 후, 너무나 기대되는 프로그램이다.
몇년 전 번역해놓은 Andras Schiff의 골드베르크 여행안내서가 생각나 올려본다.
(원본은 https://issuu.com/barenboim-said-akademie/docs/2018_programm_schiff_issu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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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여행안내서
»Se non è vero, è ben trovato.« – 사실이 아니라면, 잘 꾸며낸 것이다.
1802년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이 쓴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전기에 골드베르크-변주곡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전 러시아 대사이며 작센지방의 카이저링크 백작은 라이프치히에 자주 초청되어 갔다. 그의 하인 중 한 명인 요한 고트리브 골드베르크는 재능 있는 쳄발로주자로,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의 제자였고 나중에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제자가 된다. 백작이 불면증에 시달려 힘들어했으므로, 같은 집에 살던 골드베르크는 백작의 방 가까이에 머물며, 음악으로 주인의 고통을 덜어주어야 했다. 어느 날 백작은 바흐에게 골드베르크가 자신의 불면증을 달래주기 위해 연주할 가볍고 잔잔한 건반음악 몇 곡을 작곡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바흐는 변주곡을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그 형식은 이전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노련한 손에서 모범적인 예술작품이 탄생했다. 백작은 이 곡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해서 ›나의 변주곡‹이라고 불렀고, 자주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골드베르크, 나의 변주곡을 연주해주게나.‹ 아마 바흐는 그렇게 많은 사례금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백작은 그에게 금화 100루이가 들어있는 황금 잔을 주었던 것이다!«
»Se non è vero, è ben trovato.« - 모든 신화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도 진짜인지 의심스런 구석이 있다. 1741년 발타자르 슈미트에 의해 뉘른베르크에서 출판된 이 작품이 어째서 카이저링크 백작이나 골드베르크에게 헌정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주문받아서 작곡된 작품이라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또 의심스러운 점은, 골드베르크(1727년생)가 음악가로서 그렇게 성숙했을까(14살의 어린 나이인데) 하는 것이다. 그 어려운 작품을 소화하려면 뛰어난 음악적, 테크닉적,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역시 모든 신화에서처럼 진실도 조금은 들어있다. 바흐는 변주곡 형식의 곡을 몇 개 쓰지 않았고, 작곡 시기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그 몇 안 되는 사례는, Aria variata alla maniera italiana BWV 989 (1709), 오르간을 위한 파사칼리아 c단조 BWV 582 (1716/17)와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파르티타 d단조 샤콘느 BWV 1004 (1720)이다. 작곡시기로 보면, 샤콘느와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거의 20년의 차이를 두고 있다. 1746/47년이 되어서야 바흐는 크리스마스 노래를 주제로 오르간 카논 변주곡 Vom Himmel hoch, da komm’ ich her(»크리스마스 노래: 하늘 높은 곳에서 이곳으로 내려오도다에 의한 몇 곡의 카논변주, 두 단 건반과 페달을 가진 오르간을 위한 곡«) BWV 769를 쓰면서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장르로 돌아온다.
바흐는 광범위한 활동력을 가진 작곡가였다. 교회음악에서건, 세속음악에서건 그의 작품은 항상 최상의 것에 필적하거나 -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것을 뛰어넘었다. 그의 생활환경이 달랐다거나, 드레스덴의 궁정음악 작곡가가 되었다면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도 의심의 여지없이 오페라를 작곡했을 것이다. 1731년 이 만물박사는 엄청난 계획에 착수했다: 다양한 양식과 여러 건반악기를 위한 작품을 집대성한 클라비어 연습곡이 그것이다. 제1부(1731)에는 6곡의 파르티타가 들어있는데, 바로크 춤곡 모음의 최고봉이다. 제2부(1735)에는 이탈리아 협주곡과 프랑스 서곡 b단조가 들어있다(독일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는 작곡가라는 것이 놀랍다) 제3부는 오르간곡집이다: 프렐류드와 푸가 E♭장조, 4개의 듀엣과 다수의 코랄전주곡이 들어있다. 바흐는 마지막 제4부를 최고로 영예롭게 마무리하고자 했고, 그래서 진정한 도전으로 변주곡을 선택했다. 그는 변주곡이라는 형식에 대해서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유명했던 바흐의 동료들은 훌륭한 변주곡을 작곡해서 크게 인정받고 있었다. 바흐는 절대 쉬운 성공의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목표를 두고 정진했다. 피상적인 효과만을 주는 일반적 변주곡이 아니라,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예술 혼이 담길 수 있는 경지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표지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클라비어-연습곡, 아리아를 다양하게 변주한 두 단 클라비쳄발로를 위한 작품집«. 이것은 바흐가 특별히 연주악기를 지정한 세 작품 중 하나이다(다른 두 작품은 이탈리아 협주곡과 프랑스 서곡이다). 바흐는 1725년 아내를 위해, 그 유명한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뷔히라인을 작곡했는데, 거기 들어있는 매우 아름다운 아리아가 이 작품집의 테마이다. 아리아는 각 16마디의 두 부분이 대칭으로 놓여진다. 오늘의 청중들은 아리아의 매혹적인 멜로디에 빠지지 말고, 우선 베이스에 집중해야한다. 대성당 앞에 서면 사람들은 그 높이와 웅장함에 압도되어, 건축물 전체를 지지해주는 기초토대에 주목하지 않고 눈을 들어 화려한 첨탑과 돔을 바라보곤 한다.
파사칼리아나 샤콘느와 비슷한 이 오스티나토-베이스는 이 작품 전체의 알파와 오메가이다. 서른 번의 변주 후에,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원래의 아리아로 다시 돌아온다. 바흐는 연주자에게 모든 부분들을 반복하라고 분명하게 요구한다. 반복을 하지 않는다면, 완벽하게 만들어진 비율과 대칭은 파괴될 것이다. 위대한 음악은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으며, 그 정도 인내심 없는 청중은 드물다.
»좋은 것은 모두 숫자 3과 관련 있다.« - 그러므로 30개의 변주곡을 3곡씩 10그룹으로 나누어보자. 각 그룹은 화려하고 기교적인 토카타풍의 곡, 부드럽고 우아한 성격의 곡, 엄격한 폴리포니 카논으로 구성된다. 카논은 상승하는 음정 순서로 나타나는데, 동일한 음정에서 시작되어 9도 음정까지 올라간다. 10도 카논을 대신하는 쿠오드리베트(»좋으실 대로«)에는 두 개의 민요와 오스티나토-베이스가 어우러진다. 조성은 대부분 G장조이고 3개의 변주에서만 같은 이름의 단조로 음영을 준다.
함께 여행을 떠나보자, 나는 여러분의 여행안내자이다. 안내자는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되지만, 이 투어를 여러 번 해왔던 경험으로 동행자가 중요한 디테일에 주목할 수 있도록 인도하겠다.
아리아: 우리의 여행은, 세 박자(3/4), 리듬은 사라방드와 비슷하고, 트릴과 모르덴트와 아포지아투라로 풍부히 장식된 아름다운 멜로디로 시작된다. 이것에 매혹되어 길을 잃지 않도록 하자. 베이스를 항상 잘 따라가자.
제1변주: 한 단 건반, 3/4박자. 이 여행은 쾌활하게 빛나는 두 성부 인벤션으로 나아간다. 닥틸루스(역주: 강약약)와 아나페스트(역주: 약약강)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춤곡리듬은 이탈리아 협주곡을 떠올리게 한다.
제2변주: 한 단 건반, 2/4박자. 3성부의 온화한 곡으로, 오르간의 트리오소나타를 연상시킨다.
제3변주: 한 단 건반, 12/8박자. 동음으로 시작하는 첫 번째 카논이다. 세 성부 중, 위 두 성부가 카논으로, 두 번째 성부는 첫 번째 성부를 한 마디 뒤에서 똑 같은 음높이로 모방한다. 아래 성부는 오스티나토-베이스가 변형되어 주위를 맴돈다.
제4변주: 한 단 건반, 3/8박자. 4성부가 서로 모방하며 생동감 있게 결합된다. 프랑스 춤곡인 파스피에 혹은 빠른 미뉴에트와 비슷하다. (이 작품에서 얼마나 자주 춤곡이 나오는지 주목)
제5변주: 한 단 혹은 두 단 건반, 3/4박자. 빠른 토카타, 두 손이 교차하는 특별한 주법이 요구된다.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에 대한 오마주인 것 같다.
제6변주: 한 단 건반, 3/8박자. 두 번째 나오는 카논으로, 이번에는 2도 카논이다. 3성부 중 알토에서 테마가 시작되고, 한 마디 후 소프라노가 2도 위에서 응답한다. 베이스는 독립적인 16분음표로 진행된다. 모차르트 레퀴엠 »Recordare«에 비슷한 형태가 사용되었다.
제7변주: 한 단 혹은 두 단 건반, 6/8박자. 바흐의 자필본에 »al tempo di giga«라고 쓰여 있다. 부점 리듬이 이 지그 춤곡에 특별한 성격을 부여한다.
제8변주: 두 단 건반, 3/4박자. 또 하나의 빛나는 2성부 인벤션 혹은 토카타로, 두 손의 교차가 자주 일어난다. 두 성부 밖에 없는데도 음형들이 주는 풍부함 덕분에 네 성부 혹은 그 이상으로 들린다.
제9변주: 한 단 건반, 4/4박자. 3성부로 이루어진 3도 카논. 이번에는 소프라노가 먼저 나오고, 한 마디 뒤에 3도 아래로 알토가 뒤따른다. 바흐가 좋아했던 칸타빌레 양식으로, 아주 단순하고 명료하며 서정적인 곡이다.
제10변주: 한 단 건반, 알라 브레베. 이 4성부 »Fughetta«는 베이스에서 시작해서, 각각 4마디 간격을 두고 테너, 소프라노, 알토 순으로 따라 나온다. 이 곡으로 첫 번째 그룹이 끝나게 되면서(전체의 삼분의 일) 마무리 짓는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약간의 휴식을 갖도록 하자.
잠시 쉬었으니 이제 제11변주로 들어가자. 두 단 건반, 12/16박자. 소극적이고 담담하지만 상당한 기교가 필요하다. (두 손으로 연주하는) 두 성부는 빈번하게 교차한다. 이렇게 연주하자면 왼손이 오른손 위로 지나가야하는데, 흔하게 볼 수 있는 손 자세는 아니다.
제12변주: 한 단 건반, 3/4박자. 4도 카논. 오스티나토-베이스가 아래 성부에서 반복되는 4분음표로 나타나고, 위 두 성부는 카논으로 진행된다. 소프라노가 시작되고 한 마디 뒤에서 알토가 4도 아래로 응답한다. 여기서의 응답은 처음으로 거꾸로 모양을 바꿔 진행된다. 후반부(17번째 마디부터)에서는 두 성부가 자리를 바꿔, 알토가 먼저 나오고 소프라노가 뒤를 따른다. 이 곡은 까다롭고 복잡한 구조를 가졌지만, 활력 있는 리듬과 소박한 성격 덕분에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있다.
제13변주: 두 단 건반, 3/4박자. 낮은 두 성부인 베이스와 테너가 다성 음악적 화음으로 연결되고, 그 위로 더없이 아름다운 멜로디가 펼쳐진다. 바흐는 이 방식을 자신의 이탈리아 협주곡 2악장에서 이미 사용했었다. 이것으로 그가 장식음을 음표로 기보했던 이탈리아 예술에 경의를 표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변주는 제25변주와 아주 밀접하다: 이 둘을 남매, 혹은 여성과 남성, 서정과 비극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제14변주는 앞의 곡과 얼마나 대조적인지, 두 단 건반, 3/4박자. 트릴, 모르덴트, 아르페지오와 빠른 시퀀스로 폭발하는 생동감은 우리를 꿈에서 깨어나게 한다. 바흐는 이 곡을 아주 좋아했고 두 손 교차에 매우 능했음이 틀림없다. 유명한 동시대 음악가 도메니코 스카를라티가 이 기술을 자주 사용했는데, 나중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 스페인 요리의 유혹에 넘어가서 - 그의 배가 손을 교차하는데 극복할 수 없는 장애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 단 건반, 2/4박자, »andante«로 표기된 제15변주다. 5도 카논이고 처음으로 나오는 같은 이름의 단조-조성이다. 온음계적 오스티나토-베이스가 반음계로 변해 어두운 색이 입혀졌다. 알토가 카논을 시작하고 한 마디 뒤에 소프라노가 5도 위에서 응답하는데, (제12변주의) 4도 카논처럼 반전돼서 나타난다. 그룹으로 이어진 두개의 16분음표는 마치 »sospiri«, 한숨처럼 들린다. 이것은 깊은 슬픔, 탄식의 표현이다. 마지막에 나타나는 극단의 음정에 주목하자. 베이스의 가장 낮은 g와 소프라노의 가장 높은 d로 끝맺음을 하는데, 이 두 음은 4옥타브 반이 넘어가는 5도 관계이다. 이것은 하늘과 땅 사이의 쓸쓸한 적막을 묘사한 것이다. 이제 우리 여행의 반이 끝났으니 다시 한 번 휴식을 취하며 고요함을 즐기자.
후반부를 여는 제16변주는 한 단의 건반에서 연주하는 서곡풍의 곡이다. 첫 번째 부분은 알라 브레베, 두 번째 부분은 3/8박자, 프랑스 양식의 축제음악이다. 루이 14세와 그 후계자들은 축제에 사용할 음악으로 이 양식을 선호하여, 륄리, 쿠프랭, 라모 같은 대작곡가들에게 곡을 의뢰했다. 부점 리듬으로 시작하는 첫 번째 부분은 품위 있고 장엄하며, 두 번째 부분은 생동감으로 그와 대조를 이룬다. 바흐는 프랑스적 특징을 놀랍도록 탁월하게 사용했다 - 관현악모음곡, 건반악기를 위한 파르티타 D장조, 프랑스 서곡 b단조가 그렇다. 축제를 여는 첫 번째 부분은 빠르고 민첩한 푸가토이다. 우리의 친애하는 오스티나토-베이스는 너무 자연스럽게 묻혀 있어서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는 정말 너무 빈틈없이 숨겨놓았다.
제17변주: 두 단 건반, 3/4박자. 힘찬 여행 뒤에는 약간 편하게 가는 것이 좋다. 이 곡은 두 성부 인벤션으로, 펼쳐진 3도와 6도가 연속적으로 상행하고 하행하며 나타난다.
제18변주: 한 단 건반, 알라 브레베, 6도 카논. 여기서는 두 성부(알토와 소프라노)가 스트레토로 모방한다. 즉, 두 번째 성부가 한 박 뒤에 바로 따라 나오면서 첫 번째 성부의 두 번째 음을 쫓아간다는 뜻이다. 베이스 성부는 독자적인 길을 가는데, 아리아 본래의 베이스와는 사뭇 다르게 들린다. 이 기분 좋은 춤곡 리듬(앙글레즈일까?)은 기쁨과 지적 노련함이 함께 공존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제19변주: 한 단 건반, 3/8박자. 이 작고 매력적인 미뉴에트는 마치 오르골이나 음악시계의 연주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새로운 소리를 들려준다.
곧바로 제20변주로 이어진다. 두 단 건반, 3/4박자. 또 하나의 »pièce croisée 역주: 손이 서로 교차하는 곡«으로 장엄하고, 꾸밈없으면서도 기술적으로 어렵다. 싱코페이션으로 시작하는 부분이 까다롭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렇기 때문에 뒤에 따라 나오는 셋잇단음이 더 효과적으로 들린다.
눈부신 햇살로부터 칠흑 같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제21변주는 한 단의 건반에서 연주되며 4/4박자다. 7도 카논이고, (제15변주의) 5도 카논처럼 g단조다. 걱정과 근심 대신 이 음악에서는 격정을 토로하는 깊은 절망을 들을 수 있다. 베이스의 거친 반음계는 거대한 폭풍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전쟁이었다면 다음은 평화가 이어져야한다.
제22변주: 한 단 건반, 알라 브레베. 엄격한 4성부의 옛 스타일 (stile antico) 폴리포니다. 절망의 시기가 지나고 희망에 다다랐다고 상상해보자. 저 멀리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아-카펠라-합창 소리가 순결하게 다가온다. 잃어버렸던 우리의 오스티나토-베이스를 마침내 원형 그대로 선명하게 들을 수 있다. 30개의 변주곡을 가지는 작품에서 20번 이후 휴지기를 가지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다. 수학적으로야 그것이 맞겠지만, 곡의 흐름으로 보면 맞지 않다. 또한 7도 카논을 휴지기 다음에 시작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그 곡은 앞에서 쌓아올린 힘과 긴장으로부터 생성되어야한다. 그렇게 해서 제21변주와 제22변주는 일관성 속에서 극적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여기서 정적을 즐기시길, 다시 한 번 휴지기를 갖도록 하자.
제23변주로 우리 여행의 발걸음을 다시 내딛자. 두 단의 건반, 3/4박자라고 쓰여 있다.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는 곡으로 반짝이도록 표현해야 한다. 16분음표로 시작되는 부분을 »하-하-하«로 노래해보자. 마치 올림포스 산에서 신들이 웃는 것처럼.
제24변주: 한 단 건반, 9/8박자. 위의 두 성부가 옥타브 카논을 연주한다. 소프라노가 시작하고 두 마디 뒤에 알토가 한 옥타브 아래로 따라간다. 정확히 절반이 되는 지점에서 두 성부는 역할을 바꾼다. 곡의 빠르기와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트로케우스(역주: 강약) 리듬은 말을 타고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제25변주: 두 단 건반, 3/4박자. 단조로 작곡된 세 곡 중 마지막 곡, 작곡가가 »Adagio«라고 표기해놓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깊이 있는 곡으로, 바흐는 여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았다. 이 곡은 인간의 고통을 묘사한 수난곡이다. 반다 란도프스카는 이 곡을 »검은 진주«라고 불렀지만, 이것 역시 다른 묘사들과 마찬가지로 이 창조물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표현하지는 못한다.
죽음 이후의 삶이 존재하는가? »그렇다«고 바흐는 말한다. 두 단에서 연주하는 3/4과 18/16박자의 제26변주를 들어보자. 어둠이 지나고 빛이 왔다. 두 성부는 사라방드를(3/4박자), 세 번째 성부에서는 16분음표(18/16박자)가 바쁘게 이어진다. 이 곡의 빠르기는 기분 좋게 졸졸 흐르는 시냇물Bach (역주: Bach는 시냇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을 떠오르게 하고, 슈베르트의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에 나오는 »어디로?«와도 비슷하다. 이런 표현이 너무 낭만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러나 이 곡을 기관총 쏴대듯 공격적으로 해석한 연주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제25변주 이후의 음악은 다시 한걸음씩 천천히 삶으로 돌아오고, 개선장군처럼 행진하는 제30변주까지 중단 없이 그 길을 간다. 그러나 아직 그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이제 세련된 제27변주다. 두 단 건반, 6/8박자. 9도로 모방하는 마지막 카논이며, 다른 자매 곡들과 달리 두 성부만으로 이루어졌다. 베이스는 카논의 역할 뿐 아니라, 이 작품의 기둥으로서 오스티나토-성부가 세심하게 나타나도록 신경을 쓴다. 우리는 이제 바흐가 만든 거대한 구조물의 끝, 최종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제28변주: 두 단 건반, 3/4박자. 연속되는 8분음표의 베이스 위로 두 성부가 빠르게 장식되는데(기보된 트릴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새의 지저귐 같다. 베토벤 소나타 op. 59, 109와 111의 유명한 트릴은 이것을 마음에 두고 작곡했을 것이다.
제29변주: 한 단 혹은 두 단 건반, 3/4박자. 이 곡은 풍부한 울림으로 우리를 감탄시킨다. 두 손을 사용해서 교대로 화음을 짚어감으로써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제 필연적으로 거대한 피날레, 한 단 건반에서 연주되는 4/4박자의 제30변주로 이어진다. 논리적으로라면 이 자리에 10도 카논이 등장해야겠지만, 예상을 깨지 않는다면 바흐가 아닐 것이다. 여기서 그는 카논 대신 쿠오드리베트를 배치한다. 쿠오드리베트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유머가 가득한 곡이다. 두 개의 재미있는 민요를 바탕으로 하는데 »그대와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네«와 »양배추와 순무가 나를 몰아내네«가 그것이다. 과장됐고 자유분방하며 아주 익살스럽고 - 그러면서도 깊이 있다(오스티나토-베이스를 뚜렷이 들을 수 있다). 바흐 가족이 와인(혹은 맥주일지도?) 한 잔씩 손에 들고 함께 노래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진정한 디오니소스의 음악이다.
마지막 종지가 우리 귀에 울리고 있는 동안 잠시 숨을 멈추고 있다 보면, 어느덧 아리아가 원형 그대로 반복된다. 그러나 70분이 지난 후 다시 들려오는 아리아는 사뭇 다르게 들린다. 처음의 그 자리로 돌아오면서 원을 이루어 하나가 되며,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포르켈의 이야기에서, 카이저링크 백작이 골드베르크에게 변주곡 중 하나를 연주해달라고 한 것에 대해 우리는 그가 농담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아무도 감히 이 작품의 일부만을 연주하지 않을 것이다.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흐가 이 작품을 거대한 완전체로 썼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 스스로도 꿈속에서조차 전체를 한 번에 연주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상 150년 동안 이 변주곡은 잊혀져있었다. 음악가들은 이 작품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연주하지 않았고, 청중 앞에서는 더구나 그랬다. E.T.A. 호프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 속 카펠마이스터 크라이슬러는 이 작품을 연주해서 속물적인 청중들로 하여금 몰래 도망가거나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들었다.
오늘날에는 그와는 정반대다: 이 작품은 엄청나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주 연주되고 있다. 우리의 »여행«에서 보았다시피, 바흐는 이 작품을 두 단 건반 쳄발로를 위해 작곡했다. 현대의 피아노에서 연주하는 것을 끔찍한 죄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어왔지만, 어쩌겠는가, 그렇게 믿도록 놔둘 수밖에; 그렇지 않다고 설득하는 것은 채식주의자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쳄발로보다 피아노 소리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지금 한 시간 십오분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보라, 그렇게 오랫동안 쳄발로를 들을 수 있는가?
길이에 대해 생각할 때, 도돌이를 모두 지킬 것인지 고려해야한다. 이 완벽한 대칭구조에서는 모든 도돌이를 지키던지 아예 안 하던지, 이 두 가지만이 가능하다. 첫 번째 해결책이 바람직하다: 음악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청중으로 하여금 음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그리고 연주자에게 더 나은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당연히 기계적으로 반복해서는 절대 안 된다. 장식음 뿐 아니라 아티큘레이션과 프레이징, 다이내믹에 섬세한 변화를 주어야 한다. 어떤 곡은 반복을 하고 어떤 곡은 안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피아니스트는 단 한 음도 바꾸지 않고 이 작품을 연주할 수 있다. 두 번째 건반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 그러니까 손이 교차할 때 생기는 »교통체증«만 해결하면 된다.
편곡은 또 다른 문제이다. 현악삼중주와 현악오케스트라에서 금관오중주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모든 악기 혹은 앙상블의 현대 버전이 존재한다. 카논의 엄격한 폴리포니 구조는 현악기 하나하나의 소리와 잘 맞는다. 그러나 비르투오적인 변주들(제5, 8, 14, 20 그리고 26변주)은 너무나 분명하게 건반악기를 위한 곡이라서, 다른 악기로 옮긴다는 것이 쓸모없고 어리석어 보인다. 바흐가 작곡한 성부에 변화를 가하는 것은 심각한 훼손이다.
모든 음악가가 이 멋진 작품을 기꺼이 연주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이해될만하지 않는가? 바흐의 진실함과 영성, 낙천주의와 지적 능력은 »혼란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이런 여행은 언제든 다시 해보고 싶은 여행이다.
https://youtu.be/Hz4jLkfmIhc?si=DjdANdTT2K-f1pQ0&t=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