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Dowland – Pavana Lachrymae (1590s, arr. William Byrd)
J.S Bach – 15 Sinfonias, BWV 787 – 801 (c.1720 rev. 1723)
Beethoven – 7 Bagatelles, Op.33 (1801-2); 15 Variations and a Fugue on an Original Theme in E flat (‘Eroica Variations’), Op.35 (1802)
피아노 콩쿨에서 우승한다는 것에는 변덕스러움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피아니스트들은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후 그보다 더 훌륭하고 긴 커리어를 쌓는다; 어떤 이들은 온갖 이유로 그렇게 되지 못한다. 지난 여름 18세의 나이로 반 클라이번 콩쿨에서 우승한 한국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어느 길로도 갈 수 있다 - 그러나 그의 다음 경로는 전적으로 자신의 신념에 따른 선택이 될 것이다. 그는 보기 드문 사람으로, 아마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정반대일 것이다. 임윤찬에게 음악적 재능이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특권이 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그의 겸손함과 인류애가 나를 놀라게 하지만 - 이 말은 런던의 청중을 염두에 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좀 더 복잡한 측면이 있다. 건반에서 위험을 초래할 거칠고 낭만적인 히스클리프적 측면이다; 음악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그는 이 리사이틀에서 재작곡하는 것 같았고, 그런 그의 상상력은 매우 생생하고 놀랍도록 신선했다.
우리는 임윤찬의 놀라운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연주에서 영감을 받지 않은 것은 거의 없었고, 그 중 일부는 진정한 위대함에 가닿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이 우승한 대회의 피아니스트인 Van Cliburn과 닮지 않았다. 나는 그를 196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쿨 우승자 Evgeny Mogilevsky와 비교하고 싶다. Mogilevsky의 국제적인 경력은 소련이 그에게 서방에서 연주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다소 방해를 받았다. Mogilevsky도 18세에 동일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연주하여 우승했다 - 그러나 그와 임윤찬이 공유하는 것은 악기 소리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엄청난 건반 테크닉이다. 임윤찬의 리사이틀은 매우 드문 것이었는데, 실제로 바흐와 베토벤에 색을 어떻게 입힐 것인지를 알아가는 진정한 여행이었다. Mogilevsky는 말년에 눈에 띄지 않게 되었지만(임윤찬과는 먼 이야기일 것) 그의 손은 항상 매력적이었다 - 건반 위에 떠 있는 방식, 따뜻한 톤과 컨트롤, 울려 퍼지는 저음을 달성하는 방법, 모든 것이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그의 연주는 놀랍도록 우아했지만 그의 녹음은 전혀 세심하게 들리지 않았다.
임윤찬의 프로그램 전반부는 이 모든 것들의 하이라이트는 아닌 것 같았다 - Dowland도 Bach도 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것이 아니므로. Pavana Lachrymae는 류트를 위한 작품으로 시작되어 William Byrd가 편곡했으며, 임윤찬에 의해 깊은 안식에 도달한, 우울하고 사색적인 작품이다. 그냥 단색으로 단순하게 칠 수 있는 작품이지만, 여기에 더해진 톤의 따뜻함은 매우 아름답고 특별했다.
바흐의 신포니아는 - 여기서는 3성 인벤션 - Glenn Gould가 배치한 방식으로 연주되었다. 사실 연주 내내 그가 만들어낸 풍경을 보면, 어떤 특별한 음악적 센스를 느낄 수 있었는데, 전체 세트의 마지막을 작품번호에 따른 B단조가 아닌 가장 장엄한 - F단조로 - 끝내면서 유난히 느리게 연주한 것인데 - 그럼에도 이것이 황홀할 정도로 강렬했다. 이 공연에는 멋진 순간이 많았다 - E단조(6번)의 경쟁 성부는 충돌하기보다는 논리적 대칭을 이루었고; E플랫(5번) - 왼손에서 시작되는 기념비적인 오프닝 옥타브와 그에 어우러지는 대선율은 풍부했다. 임윤찬의 바흐 연주는 빠른 패시지에서 상당히 타이트한 경향이 있지만 - 그러나 결코 페달이 과하지는 않다 - 톤이나 색을 조절하는 능력과 침묵 사이의 공간은 분명히 이미 존재했다. 그는 색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그의 바흐 스케일에서 단순함을 지운다; 더 빠른 패시지에서도 사운드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리사이틀의 후반부는 베토벤에게 바쳐졌고, 어떤 의미에서 임윤찬은 다소 다른 마음가짐으로 무대에 돌아왔다. 바가텔과 에로이카 변주곡은 거의 같은 시기(1801/2)에 만들어졌지만, 두 작품은 확연히 다르다. Dowland와 Bach가 약간의 자제를 요구했다면 이 특별한 버전의 베토벤은 사납고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았다.
임윤찬이 음악에서 액센트를 연주하지 않는다면 그는 특별하지 않을 것이다 - 그것은 그의 라흐마니노프에서 주목할만한 특징이었다. 바가텔 E플랫은 스포르잔도 액센트로 점철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왼손 음계와 악마 같은 아르페지오가 있는 C장조는 정확하고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임윤찬은 여러 면에서 시각예술가이다 - 바가텔에서 그의 손 점프와 손가락 도약은 곡예적이지만 매우 우아했다; 그는 자신만의 마리오네트이며, 가장 완벽한 소리와 가장 완벽한 색상을 이끌어내기 위해 모든 것이 공들여 설계되었다. 예를 들어 바가텔 A는 정말 멋졌다. 왼손 다섯 번째 손가락의 손재주와 근육 조절이 상당히 뛰어났다; 그런 깊이와 풍부함을 주면서도 여전히 그 울림을 유지하는 왼손 베이스 셋잇단음을 나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역주: 2번 스케르초 C장조의 중간 A 마이너 부분을 말하는 듯?). 다시 말하지만, 언더페달 능력은 오른손의 옥타브가 과도하게 생성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므로 음표에서 정확하게 끝나고 그 이상으로 빠지지 않는 완벽한 사운드를 얻었다. 마지막 바가텔에도 급작스러움과 화산 같은 힘이 있었다. 맹렬한 마지막을 만들기 위해 용암과 같은 왼손 스타카토와 목으로(?) 음악을 잡아챘다.
베토벤의 에로이카 변주곡은 아마도 프로메테우스와 더 관련이 있을 터이지만, 그 기원이 무엇이든 그것은 교향곡의 감각과 피아니스트의 기교를 모두 갖춘 작품이다. 임윤찬은 거대한 포르티시모 으뜸코드로 변주곡을 열었을 때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 우리는 여기서 8개의 음표로 된 격렬한 폭풍 속으로 임윤찬을 뛰어들게 했다. 나는 피아니스트가 Basso del Tema를 어떻게 연주하는지 듣지도 않고 누군가의 에로이카 변주곡을 이해한다는 것에 의문이 든다 - 임윤찬은 여기서 장엄한 울림의 모든 것을 담았다. 이것은 나중에 천둥같은 푸가에서 승리의 오프닝 코드가 강화되어 나타날 것이었다.
임윤찬의 연주가 끝나고 이 오프닝 코드를 다시 시작한다면 이게 얼마나 큰 아이디어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 그는 템포로 연주를 조절하는 경향이 실제로 있는 것 같다 - 그것이 항상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의미에서 그는 Pogorelich 또는 Afanassiev와 매우 다르다). 바흐 인벤션에서 그는 빠르거나 느릴 수 있었고 - 드문 일이지만 그의 의도는 적중한 것 같았다. 에로이카 변주곡의 경우는 특히 XIV와 XV가 끝날 무렵에 그 비중이 매우 컸다. 그는 XIV의 반음계 악절에 상당한 강렬함을 가져왔고, 연주의 무게감은 그가 음악의 감정적 핵심을 정확한 온도로 설정할 수 있도록 했다. 베토벤적 장식의 질감을 다듬는 그의 경향에 - 그가 바흐에서 한 것처럼 - 어느 정도 날것의 느낌을 더했다(XIV 변주의 테마는 특히나 이례적이었다). 푸가에서 우리는 임윤찬이 페달을 더 누른 채 유지한 것을 들었는데 - 그것은 아름답게 제어된 것이었다.
테크닉면에서 연주는 최상급이었다. 그의 왼손은 너무 강력해서 베이스 코드가 결코 가려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종소리와 같은 풍성함으로 눈부시게 울려 퍼졌다. 그의 오른손에서는, 아무리 생기가 넘치더라도 셋잇단음을 연주할 때 놀라운 긴장이 느껴졌다. 32분음표 파트를 연주한 패시지에서는 그 리듬이 외과적이리만치 정밀하게 유지되었다. 반복되는 옥타브 B-플랫 또는 왼손을 위한 여러 A플랫 옥타브는 - 다시 Tema가 돌아올 때 - 거대한 산과 같았다. fortissimo에서 그의 소리는 엄청났지만 결코 통제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테크닉은 임윤찬에게 음악적 통찰력이 뛰어난 연주를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의 에로이카 변주곡은 긴장감과 통찰력이 어우러졌다. 임윤찬은 베토벤의 악보를 음표와 음표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사용했다. 옥타브가 한 옥타브에서 다음 옥타브로 점프하거나, 음표가 건반에 못처럼 두드려지는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서술적 이유가 있었다. 때로는 무미건조해 보이는 이 작품에서 임윤찬은 종종 교향곡적인 스케일이기는 하지만 매우 생동감 있는 연주를 만들어냈다.
그는 두 번의 앵콜을 선사했다. 첫 번째, Myra Hess의 필사본에 있는 바흐의 Jesu, Joy는 Hess가 했을 법한 연주와는 완전히 달랐지만 아름다웠다. 두 번째, 리스트의 Liebesträum No.3은 정말 놀라웠다. 임윤찬이 이 곡을 뽑아낸 그 곳은 나를 넘어선 곳이었다 - 그 순수한 아름다움, 황홀한 연주, 일회성 장인 정신, 놀라운 루바토를 잊을 수 없다. 임윤찬이 당대 최고의 리스트 연주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최고의 리사이틀이었다. 나는 임윤찬이 특별한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표준적인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그에게서 별로 볼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사상가, 개인주의자, 건반의 철학자이다. 나는 가끔 그의 연주를 듣고 일본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소노다 타카히로나 심지어 에드윈 피셔의 연주도 듣는다. 그는 뛰어난 한국 피아니스트 손민수로부터 - 그 역시 훌륭한 바흐와 베토벤 연주자이다 - 현명하게 기초를 닦았고 멘토링을 받고 있다. 임윤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그가 자신의 신념을 따르고 듣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최악일 것이다.
23/01/2023 by Marc Bridle
https://seenandheard-international.com/2023/01/a-standout-debut-from-yunchan-lim-at-wigmore-hall/
A standout debut from Yunchan Lim at Wigmore Hall – Seen and Heard International
United Kingdom Dowland, Bach, Beethoven: Yunchan Lim (piano), Wigmore Hall, London, 18.1.2023. (MBr) Yunchan Lim at the Wigmore Hall John Dowland – Pavana Lachrymae (1590s, arr. William Byrd) J.S Bach – 15 Sinfonias, BWV 787 – 801 (c.1720 rev. 1723)
seenandheard-internatio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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