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GOLIA '09 ~'11

일기 (5월 7일 ~ 5월 14일)

stella2022 2009. 7. 1.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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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받고 있는데, 윤희가 싸 가지고 와서 창 밖에 내놓은 묵은 찌와 멸치가 든 봉지를 누군가가 훔쳐갔다. 그 순간을 목격한 명숙이와 규희가 뭐지? 권짱인가?(모자 쓴 모습이 비슷하여) 하는 사이 도둑임을 알게 되어 뒤쫓아 갔으나 놓치고 말았다. 나중에 학원 측의 설명을 들으니 이 건물이 본래는 교회 건물이고 주변에 병원도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닌다고 주의를 부탁한다.

우리는 결국은 버려지게 될 운명의 묵은 찌와 멸치(외국인이 어떻게 먹겠는가?)를 생각하니 아깝기도 했지만, 그 사람이 봉지를 열어봤을 때의 상황이 너무나 웃겨서 한참을 배꼽을 잡고 웃었다.

 

오전 수업 후반부는 학원 측에서 준비한 특강인 몽골 역사 강의로 대체되었다. 그런데 한국어로 통역하시는 분이 너무 통역을 못하고 발음이 이상해서 20% 정도 밖에 전달이 안 되는 것 같다.

 

오늘 점심으로 나온 볶음밥은 먹을 만 했지만, 고기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 때문에 고기는 골라내고 먹게 된다. 나도 내심 윤희처럼 도시락을 싸오고 싶지만, 단체의 나이든 사람으로 모범을 보이자는 동은언니의 말씀을 따라야 할 것 같다.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가 아픈데도 밥도 챙겨주지 않고 자기만 아는 사람이 있다. 한국의 훈련소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이기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단원을 보며 꼭 봉사를 목적으로 코이카에 지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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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차 몽골어 시험이 있는 날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혼자 공부해야 잘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의 합숙생활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우리 방으로 놀러오는 단원들에게 공부할거니까 가라고 하기도 그렇고, 룸메이트가 다른 일을 하면 나만 공부하기도 좀 그렇다. 그래서 결국 평소 실력으로 시험을 보기로 했다(물론 조금은 공부했지만~).

 

오전 수업에서는 복습을 위주로 공부하고, 오후에 시험이 있었다.

시험은 쓰기 시험과 말하기 시험으로 나누어졌는데 대체적으로 쉬운 편이었고 공부만 제대로 했으면 하나도 틀리지 않았을 것 같다.

시험을 잘 보는 것 보다는 말이 빨리 되야 하는데, 아직은 간단한 문장 말고는 잘 들리지 않는다.  

 

시험이 끝나고 OJT(4 5일간 현지인 집에 홈스테이 하며 배정기관에 가서 각자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알아보는 기간)를 위한 오리엔테이션에서 단원들이 사무소의 일 처리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고 이에 대해 양과장님의 답변이 이어졌다. 몇몇 단원은 그 답변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몇몇 단원은 여전히 불만인 것 같다.

 

정주와 정효는 벌써 오늘 저녁 셀렝게로 떠나게 되었다. 동은언니가 얼른 저녁을 해서 둘을 먹이고 배웅을 한다. 내일부터 우리들 모두 각자의 임지로 가게 된다. 가장 멀리 떨어진 헙드는 비행기 편이 구해지지 않아서 취소되고 울란바토르에서 홈스테이 하기로 되었다. 나는 몽골어 학원의 알튼토야 선생님 집에서 지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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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의 집 사정이 어떤지 몰라서 아침부터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는 부산을 떨었다. 울란바토르에 머무는 우리 몇몇은 짐을 두고 가도 기숙사에 들리 수 있기에 많은 짐을 가져가지는 않지만, 노트북 등 귀중품을 챙기니 그래도 꽤 무겁다. 노트북 가방, 어깨에 매는 가방 하나, 손에 드는 가방 하나.

 

10에 홈스테이를 제공해줄 몽골어 학원 선생님들이 오셨다. 나는 알튼토야 선생님과 택시를 타고 소이스(문화예술대학) 근처의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소이스까지 걸어 다녀도 될 거리이다.

집에서 그녀의 11살 아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서 둘러보니 큰 방 하나, 작은 방 하나, 욕실이 있는 집이다. 작은 방에는 그녀의 사촌동생 둘이 머물고 있는데 나는 어디서 자는 거지? 그녀의 남편은 흡스굴에 가서 며칠 있다가(홈스테이 끝나고) 온단다. 방에 큰 침대가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알튼토야, 아들, 내가 한 침대에서 자야하는 것 같다. 흐흐 ^^;

 

내가 기침하는 것을 보고 목에 좋은 얼린 과일을 내온다. 무척 시다. 수태채도 마셔 보았는데 조금 짠 듯, 구수한 듯 마실 만 하다. 이것 저것 내오며 자기 집처럼 편하게 지내란다. 신경을 많이 써주는 것 같다.

알튼토야는 몽골어 선생이라 그런지 내게 말을 시키며 우리가 그 동안 배운 문법을 다시 한번 설명해준다. ^^

점심 전에 잠시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하고 집 주변을 산책했다. 메트로라는 쇼핑센터에 가서 둘러보니 지하 미니마켓에 한국과 다름없이 없는 게 없다. 한국 라면, 한국 음식재료, 독일 커피도 있고~ 소이스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지도를 두고 나와서 못 찾고 알타가 걱정할까봐 그만 집으로 돌아왔다.

수태차 때문인지 속이 좀 안 좋아 점심을 안 먹겠다고 하니 몽골에서는 저녁을 일찍 먹으니 4시쯤 먹자고 한다. 그럼 밤에 배고프지 않을까?

침대에 앉아서 TV를 보다가(한국 드라마가 많이 한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내 이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니 알타가 저녁을 먹자고 한다. 만두국(반시슐)이다. 아까 소고기로 만들던 음식이다. 생각보다 냄새가 안 나고 맛있는 편이다.

 

알타의 가족사진을 보고 이야기 나누며 몽골어를 배우고, TV(에덴의 동쪽)을 보고 있으니 알타는 피곤하다고 잠깐 자겠단다. 나도 좀 누워야겠다.

 

밤에 배가 고플 때쯤 알타가 타륵(요구르트)을 가져온다. 요즘 몽골 젊은이들은 저녁을 일찍 먹고 밤에 배가 고프면 타륵을 먹는다고 한다. 타륵이 굉장히 진하고 시다. 설탕을 왕창 넣고 먹으니 요플레 맛이다. 좀 너무 진하군~

몽골은 유목민의 나라, 유제품이 발달한 나라이다.    

 

큰 침대는 나를 위해 시트를 새로 깔고 잠자리를 준비해준다. 알타와 아들은 옆 바닥에 요를 깔고 자겠다고 한다. 침대가 크고 바닥의 요는 작아서 내가 바닥에서 자겠다고 하니 자기는 날씬해서 괜찮다고 한다. 좀 미안하다. 새로 빨았는지 이불에서 깨끗한 비누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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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돈보스코 학교 옆의 주교좌 성당으로 미사를 갈 예정이었으나, 아침에 항올성당의 성가 단장님으로부터 반주자가 없으니 미사반주를 부탁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미사 시간이 40분 밖에 안 남아서 허둥지둥 준비를 마치고 알타가 준비해준 빵과 계란후라이, 커피를 얼른 먹고 어제 산책 때 익혀 둔 메트로 마켓으로 나갔다. 단장님과 함께 양과장님 와이프인 정순씨가 차로 마중을 나와서 미사 10분 전에 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가대석에 가보니 야마하 키보드가 있었고 오랜만에 미사 반주를 했다. 원래 반주하던 학생이 지방에 갔다가 못 올라오는 바람에 갑자기 대타를 구하게 되었다며 앞으로 고정 반주자가 되어달라시는데, 돈보스코의 도미니카 수녀님도 가끔 미사반주를 부탁하셔서 고정 반주는 할 수 없고 종종 도와드리겠다고만 말씀드렸다.

 

미사 후 신부님께서 언제부터 몽골 아이들 반주 교육을 해주겠냐며 확답을 요구하신다. 그래서 두 달 후 합숙훈련이 끝나면 시작하겠다고 말씀드리니, 옆에서 듣고 있던 도미니카 수녀님(다른 지역에서 활동하시는)이 엘리사벳 수녀님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신다. 신부님은 우리 신자니까 자기가 우선이라고 강조하시고..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니 기분이 좋다. 미사 드리기 전에는 앞으론 적어도 하루 전에 연락하지 않으면 반주 못하겠다고 해야지, 어떻게 미사 40분 전에 연락을 하냐? 하고 불평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미사를 드리고 나니 언제든 필요로 한다면 기쁘게 쓰임 받겠다는 마음이다. ^^*

 

동은언니는 먼 곳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바람에 미사 시간에 맞춰 오지 못해서 오늘 미사는 못 드리게 되었다. 미사 끝나고 언니와 만나서 하나로마트(한국산 식재료 행사전이 열리고 있다)로 가서 고추장, 된장, 오늘 요리할 불고기 소스 등을 사고 기숙사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동은언니는 헙드에서 온 선배단원과 약속이 있어 먼저 가시고, 나는 빨래까지 마치고 근처 시장으로 가서 소고기와 야채 등을 사서 알타의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보니 소이스가 메트로마트 옆임을 알게 되었다. 어제 산책할 때는 바로 옆에 두고 못 찾은 거다. 알타네 집에서 걸어서 5분 남짓이니 내일부터 다니기 쉽겠다.

 

여기 시장에서는 고기를 썰어주지 않는다(그러나 아직 정확히는 모름). 그래서 소고기를 얇게 써는 일부터 시작해서 불고기양념을 섞어서 재어두고 야채를 다듬어 썰어서 불에 지글지글~

몽골사람들은 달고 짠 음식을 좋아해서 간이 어떤지 알타에게 물어보니 딱 좋다고 한다. 알타도, 아들 포제도 아주 맛있게 먹는다. 내게는 약간 소고기 냄새(몽골정육점에서 나는 냄새)가 나서 좀 그랬지만, 사촌동생도 눈물이 나게 맛있다고 하니(한국어를 전공하고 있다) 성공이다~! ^^*

 

밥을 먹고 알타가 한국 학생들 몽골어 과외를 해주러 간 동안, 포제가 몽골 전통 놀이를 가르쳐준다. 샤괴라고 하는 양의 복숭아뼈로 하는 놀이로, 주사위처럼 뼈들을 던져서 뼈의 모양에 따라 우리의 구슬치기처럼 맞추는 게임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계속 하다보니 이해가 간다. 내일은 한국의 공기놀이를 가르쳐줄까 보다. 기숙사에 가서 가져와야지. 학원에서 대학생 아이들도 재미있게 했으니 포제도 좋아할 거야.

 

내일은 소이스로 가서 내가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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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한참을 기다려도 소이스 교수에게서 연락이 안 온다. 알타가 여러 번 전화를 시도해보았지만 받지 않는다. 알타는 출근하고, 기다리다 못해 소이스에 가서 기다리겠다는 문자를 어렵사리 몽골어로 써서 보내니 답장이 온다. 지금 바쁘니 오후 1에 오라고(사촌동생이 대신 읽고 번역해 줌). 아직 오전이니까 기숙사에 가서 샤워하고 점심먹고 가야겠다.

 

버스를 탈까 하다가 지리도 익힐 겸 한번 걸어가보았다. 기숙사까지 빠른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린다. 중간에 은행에 들려 사무소에서 받은 홈스테이 비용을 잔돈 달러로 바꾸었다. 기숙사에서 샤워를 하고 정장으로 갈아입을까 했지만 도저히 구두 신고 걸을 자신이 없어서(길이 너무 안 좋다. 하이힐 신고 잘 다니는 몽골여자들 보면 신기하다. 구두가 일주일이나 갈까?) 검정색 진바지에 가죽쟈켓 차림 그대로 가야겠다. 포제에게 가르쳐 줄 공기를 챙기고 라면을 얼른 끓여먹고 나니 시간이 좀 늦을 듯하다. 택시를 타야겠다. 여지껏 보았던 택시는 무척 낡은 차였는데 내가 잡은 차는(일반 자동차가 택시 영업을 한다) 좀 좋은 차라 요금이 비싼 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내릴 때 그냥 1500(원화=투그륵, 거의 같다)을 주고 내렸다. 아마 1200원 정도의 요금일 거다. (잘못하면 바가지를 쓴다고 한다. 그러지 않으려면 원래 요금일 듯한 요금보다 조금 더 주고 그냥 내려버리라고 선배단원이 알려줌.)

 

1에 소이스에서 기다리는데 교수가 안 온다. 문자를 넣었는데도 감감무소식.. 좀 더 기다리다 전화를 하니 받는다. 조금 기다리란다. 정말 바쁜 것인지, 몽골인은 원래 약속 시간을 잘 안 지키는 것인지 모르겠다. 만나고 보니 지난 번에 코이카 사무소 분들과 만났던 교수다. 학교 안 복도는 정전인지 절전 중인지 온통 깜깜하다.

 

교수가 통역을 데려왔냐고 묻는다. 안 데려왔다니까 자기가 한 사람 데려온다. 지난 번에 했던 이야기를 다시 묻기도 하고... 그런데 지난 번에 했던 이야기와 좀 다르다. 코이카 직원이 없어서 그런지 코이카에서 자기보고 내 집을 구해달라고 했다고 좀 싫어하는 눈치다. 코이카로부터는 한국에서 대단한 피아니스트가 온다고 들었다고, 그런데 전공자도 아니고 음악교사반을 가르친다면 학교 측이나 나의 이미지에 좋지 않을 것 같단다. (이제와서 나보고 어쩌라고 그럼 그 때 코이카 직원 있을 때 이야기하지) 나는 소이스 측에서 괜찮다고 하면 사무소와 상의하여 다른 학교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교수도 나만 괜찮다면 소이스에서 가르쳐도 좋지만 잘 생각하고 결정하라고 이야기가 되었다. 사무소에 가봐야겠다. 바그노르에 가 있는 명숙이와 통화해보니 바그노르 자연 환경이 여기보다 좋다고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다. 바그노르에 아직 음악교사 자리가 남아있다면 그 쪽으로 가야겠다고 사무소에 이야기해야겠다.

 

사무소의 양과장님과 장과장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바그노르와 다르항의 음악교사 자리를 다시 알아보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쪽에도 사정이 어떤지 모르니까 소이스에서 가르쳐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나의 임지는 좀 더 기다려야 결정이 날 것 같다. 다르항에 호열 신부님이 계시다는데 거기 가게 되면 좋겠다. 이호열 신부님과는 지난 번에 돈보스코 학교에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신부님은 처음에 몽골에 오셔서 거리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셨단다. 엄청 고생하면서 이곳에 정착하신 것 같다.

 

사무소에서 나오는데 너무 허기가 져서 마침 한국식당이 보이길래 들어갔다. (너무 좋아보여서 잠시 망설임 ^^;) 한국분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얼큰한 순두부찌개가 먹고 싶었으나 하필 없어서 된장찌개를 주문하여 반찬까지 싸악 다 먹었다. 다른 곳보다 좀 비싸고 서비스 요금까지 합하여 7150. 몽골에서는 꽤 큰 돈이다. 한 끼 잘 먹었으니 되었고~, 배도 부르니 집까지 걸어가볼까~

 

알타가 오늘 영화를 보자고 했는데 학교 일이 늦어져서 미안하다고 문자가 왔다. 나도 오늘 부임지 변경 문제로 심적 부담이 있어서 그런지 좀 피곤한데 잘 됐다. 일기를 쓰고 있쟈니 사촌동생 졸라가 와서 말을 건다. 나는 몽골어를 배우고 졸라는 한국어를 배우고, 가지고 온 공기놀이도 가르쳐주었다.

 

푸제와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데, 알타가 10시 반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학교에서 일이 많았다고 한다. 나 때문에 걱정이 되었나보다. 밥은 먹었냐고 묻는다. 피곤한 알타를 위해서 푸제를 도와 이부자리를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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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쯤 현관문을 세게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식구들 모두 잠이 깼다. 알타가 놀라서 일어나 누구냐고 묻는다. 아마 미친 여자이거나 술 취한 여자인가보다. 남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문을 안 열어주니까 계속 문을 두드리고 발로 차고 시끄럽다. 알타가 뭐라 했는지(경찰을 부른다고 했단다) 가 버린 것 같은데 조금 있다가 다른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몽골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있나 보다. 나는 겁을 집어먹고 이불 속에서 꼼짝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 몽골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이런 경험을 해봐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모르는 사람이 문 두드리면 절대 열어줘서는 안된다고 누누히 들었었다.

 

아침식사로 빵에 소시지 같은 간을 발라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다. 전통적인 몽골음식보다 외국인도 먹을 수 있는 식사로 준비해주는 알타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진다. 동은언니는 매일 질긴 양고기 요리를 먹는다는데.

 

오후에 코이카 사무소 직원들과 함께 소이스 교수를 만나 나의 결정을 이야기 하기로 했다. 그 때까지 시간이 여유로우니 기숙사로 가서 씻고 쉬다 가야지.

 

사무소 양과장님이 다르항의 학교와 연락을 했단다. 두 군데의 학교에서 음악교사 요청이 있었는데 한군데는 시설이 괜찮다고 한다. 두 군데 모두 1~9학년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다르항이 공기가 좋다고 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다르항에서 이호열 신부님이 돈보스코 청소년 학교를 운영하신다고 하니 성당에서도 할 일이 있을 것 같고. ^^*

 

양과장님, 세기와 함께 소이스로 가서 교수를 만나 잘 이야기가 끝났다. 이번에는 코이카와 소이스가 함께 일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앞으로 기회를 만들어 보자는 마무리로.

 

집에 일찍 들어와 몽골어로 일기쓰기 보고서를 쓰고 있으니 알타가 오늘은 일찍 들어온다.

밥 먹고 영화를 보러 가자며 뭘 먹고 싶냐고 묻는다. 내가 먹어본 몽골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야채 호쇼르(군만두 비슷)가 먹고 싶다고 하니 주방(주방이라기보다는 복도)에서 달그닥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반죽을 해서 그 안에 다긴 소고기와 양배추를 넣고 기름에 튀겨낸다. 여지껏 먹어본 호쇼르 중 가장 맛있다. 정성이 더해져서 그렇겠지.

 

푸제가 오늘은 수학과외 수업을 받느라 늦어진다. 울란바타르 유일한 영화관인 텡기스 극장에서 바로 만나기로 하고 푸제의 저녁거리로 호쇼르를 싸서 집을 나섰다. 극장이 바로 5분 거리에 있다. 배고픈 푸제에게 호쇼르를 먹이고, 영화를 보여주는 답례로 콜라를 3병 사서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몽골 로맨틱 코미디 영화인데, 좀 유치하긴 하지만 재미있게 봤다.

 

오늘은 홈스테이 마지막 날이라 준비해온 선물 알타에게는 한국 기념품점에서 산 거울/주머니 세트, 그리고 각 가족에게 핸드폰줄 을 주니 무척 좋아한다.

 

5 13() 

 

아침 먹고 푸제와 작별인사를 하고 알타와 함께 집을 나섰다. 학원으로 가는 버스가 마침

집 근처에 와서 그 버스로 기숙사까지 왔다.

 

점심에 동은언니를 만나 소이스 건너편 병원에서 근무하는 선배단원과 함께 점심을 간단히

먹고 시장에 들러 감자며 양파, 마늘, 내가 먹을 고우다 치즈 등등을 사왔다. 간만에 기숙사에 밥을 해 먹는다.

 

홈스테이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밤 늦게까지 수다 수다 ^^ 

 

5 14()

 

어제 늦게까지 보드카를 마셨더니 머리가 아프다. 모두들 피곤한 기색에 공부가 되지 않는다. 선생님도 우리가 피곤한 걸 아시고 수업 중간에 산책을 시키신다.

 

오후에는 학원으로 양과장님이 오셔서 비용 정산을 하시고 각자의 경험을 발표시켰다. 어떤 단원은 홈스테이 가족도 좋았고 부임할 기관 사람들도 친절했던 반면, 어떤 단원은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내내 먹어야 했고 기관에서도 불친절하거나 단원이 자기 기관에 부임하면 가져올 혜택만을 이야기하는 등 각자의 경험도 어찌나 다른지..

 

나는 다르항의 어요니 이뢰디(아동 미래학교)라는 학교로 부임하기로 결정이 났다. 

다르항은 몽골 제 2의 도시로 공기도 울란바타르보다 훨씬 좋고 청조해운이 들어와 한국에서 짐 부치기에도 용이하다고 한다. 울란은 공기 나쁘고 항상 흙먼지가 날라다니고 차가 많아 정신이 없는데, 빨리 다르항으로 가고 싶다.

 

OJT를 잘 마쳤다고 사무소에서 돼지갈비를 사 주셨다.

 

앞으로 한 달 정도 훈련기간이 남았다. 오래 함께 지내다 보니 단원들의 장단점이 보이고 약간의 트러블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럴 때 맏언니 동은 언니가 쓴 소리를 하기도 하고 중심을 잘 잡아주신다. 나도 동은언니와 국대표를 도와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쓴 소리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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